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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포도...이육사 선생님의 청포도 시와 화분의 청포도,그리고 조국광복을 위해 희생한 독립투사를 기리며
    카테고리 없음 2017. 8. 15. 14:55


    <아파트 화분에서 키우고 있는 청포도입니다. 제가 중학1년생 때, 고향의 해발 1207미터 높이 문수산 등정을 가는 길에 두메산골집에서 줄기를 꺽어와서 이제까지 이어져 살고 있는 토졸 청포도입니다. 열매가 엄청 향기롭고 아주 단맛이 강하게 납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청포도/ 이육사 -
     
     
    * 이육사(1904 ~1944년) 
     
    호 육사 본명 이원록, 경북 안동출생. 1925년에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사관학교에 입학,1927년에 귀국하였으나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264번을 따서 '육사'라고 지었다. 출옥 후 다시 베이징대학 사화학과에 입학, 수학 중 루쉰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이 해 6월에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일제 베이징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무려 17번이나 체포 감금 고문에 감옥살이를 하고 옥사하는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이자 독립지사...
     독립정신을 시로 표현한 많은 시 중에 <청포도> <광야> <꽃> < 절정>은 특히 유명하다
    특집방송에서 이육사 독립지사 방영에서 무려 17번이나 일제 감옥살이를 하면서 모진 고문에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가족면회를 하는 장면, 아내가 갈아입을 옷을 갈아입히려고 하는데, 고문에 의한 피투성이 몸에 옷이 말라붙어서 갈아입지 못하는 장면에서서느 눈시울이 뜨거웠다.  평생 감옥살이를 하고 가정을 돌보지도 못하는 통에에 외아들은 어린나이에 잃어버리고  독립투쟁에 일생을 바친 이육사 독립지사의 거룩한 조국 독립정신을 기리며, 광복절 새벽에 깊은 존경의 마음에서 글을 올려봅니다 
      
     
    청포도/이육사 
     
    <....이 시는 기다리는 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는 조국 광복의 그 날, 잃어버린 고향과, 그 같은 평화롭고 화해로운 인간적 삶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육사 시인의 아름다운 소망과 굳은 의지를 '청포도'라는 사물을 통하여 밝고 건강한 분위기와 서정성이 충만한 표현 방법으로써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육사 시인은 '손님은 찾아온다고 했으니'라는 시어를 통해, 조국의 광복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약속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단순한 믿음을 넘어서 미래를 미리 준비하는 예언자적인 사람의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 
     
    다음의 내용은 <민근홍의 언어마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청포도> 시의 배경은 경북 영일군 동해면 도구리로서, 영일만과 동해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당시 여기에는 일본인 미쓰아가 경영하는 대규모 포도밭과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포도주 생산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육사는 1940년 여름 항일 운동과 구금 생활에 폐결핵으로 상한 고달픈 몸으로 이곳을 찾아 왔다. 이곳의 애국 청년 김영호(당시 35세.작고), 정의호(당시 37세.작고), 이석진(당시 40세.작고)씨 등과 만나기 위함이었다. 장년의 육사는 우국 청년들과 함게 탐스런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린 포도 숲 속에서 어쩌면 밀담을 나누기보다는 먼저 시상에 젖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포도송이처럼 짓푸른 영일만, 졸고 있는 듯 떠가는 돛단배, 우국 청년의 가슴을 메우는 기다림, 시인의 마음에는 잔잔한 시의 물살이 살랑대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육사는 몰래 포항에 잠입해 청년들을 만난 뒤 역시 몰래 떠난 1년 뒤 삼륜 포도원과 영일만이 청포도를 탄생시켰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그 편지를 분실한 후 최근까지 까맣게 잊고 있다가 뒤늦게 알려졌다.> -출처: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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