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재미......낳아주신 부모님을 저 세상으로 보내드린다는 일, 그 깊은 슬픔.카테고리 없음 2015. 1. 25. 00:19
<지는 해는 내일이면 다시 떠오르지만....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서 저 세상으로 영영 떠난 후에는...>
가재미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 바라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의 누대의 가게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에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지난 가을날 동백섬의 억새꽃>
가재미 2
꽃잎, 꽃상여
그녀를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벌의 옷을 장만했다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옷, 꽃상여
그녀의 몸은 얼었지만 꽃잎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두꺼운 땅거죽을 열고 독 같은 고요 속으로 천천히
그녀가 걸어 들어가 유서처럼 눕는다.
울지 마라, 나의 아이야, 울지 마라
꽃상여는 하늘로 불타오른다
그녀의 몸에서 더 이상의 그림자가 나오지 않는다
붉은 흙 물고기
상두꾼들이 그녀의 무덤을 등 둥근 물고기로 만들어 주었다
세상의 모든 무덤은 붉은 흙 물고기이니
물 없는 하늘을 헤엄쳐 그녀는 어디로든 갈 것이다
개를 데려오다
석양 아래 묶인 한 마리 개가 늦가을 억새 같다
털갈이를 하느라 작은 몸이 더 파리하다
석양 아래 빛이 바뀌고 있다
그녀가 정붙이고 살던 개를 데리고 골목을 지나 내 집으로 돌아오다
가재미 3.- 아궁이의 재를 끌어내다
그녀의 함석집 귀퉁배기에는 늙은 고욤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방고래에 불 들어가듯 고욤나무 한 그루에 눈보라가 며칠째 밀리며 밀리며 몰아치는 오후
그녀는 없다, 나는 그녀의 빈집에 홀로 들어선다
물은 얼어 끊어지고, 숯검댕이 아궁이는 퀭하다
저 먼 나라에는 춥지 않은 그녀의 방이 있는지 모른다
이제는 그녀를 위해 나는 그녀의 집 아궁이 재를 끌어낸다
이 세상 저물 때 그녀는 바람벽처럼 서럽도록 추웠으므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식은 재를 끌어내 그녀가 불의 감각을 잊도록 하는 것
저 먼 나라에는 눈보라조차 메밀꽃처럼 따뜻한 그녀의 방이 있는지 모른다
저 먼 나라에서 그녀는 오늘처럼 밖이 추운 날 방으로 들어서며
맨 처음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쓸어볼지 모르지만, 습관처럼 그럴 줄 모르지만
이제 그녀를 위해 나는 그녀의 집 아궁이의 재를 모두 끌어낸다
그녀는 나로부터도 자유로이 빈집이 되었다
- 가재미 / 문태준 -
어제 퇴근 전철안에서 무심히 앉아 있는데, 단짝 친구의 어머님께서 별세하셨다고 울면서 전화를 해와서 옷을 갈아입고 바로 봉화읍에 가서 조문을 하고 돌아와서 친구어머님을 그리며 글을 써본다.
그 친구 어머님은 늘 친어머니와 다를 바 없이 정을 주셨던 분이시다.
친구집에 가면 늘 따뜻한 미소로 반겨 맞으시며, 맛있는 식사도 꼭 먹고 가라고 정성드린 음식을 한 상 차려주시며
내가 살아가는 고비고비 마다 격려와 칭찬을 해주셨다.
분홍빛 사과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과수원 안에 살던 그 친구집을 가면 언제나 사과꽃 향기가 가득했고,가을이면 빨간 사과가 흐드러지게 열려 가지가 늘어뜨려 있었다.
그래서 그 때 각인된 아름답던 사과꽃 향기와 정서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아서 아직도 도시의 아파트 에서 사과나무를 기르고 있다.
너무 슬프지만 이제 저 세상에서 영원히 편안하시길 빌어 드린다.
나는 가끔 문태준시인님의 '가재미' 시를 읽는데, 미처 다 읽지도 못하고 눈물로 앞이 흐려지고 만다.
문태준 시인님의 시는 향토색 짙은 서정적이면서 내가 겪었던 부모님과의 이별의 슬픔을 그대로 극명하게 떠올리도록 표현하고 있으므로......
더러는 따서 곰삭혀서 먹기는 했지만, 대체로 따지 않은 채 까만 고욤이 달려있는 나뭇가지에 차가운 눈보라 몰아치는 춥기만 했던 그 시절의 시골 부모님들의 고달프고 가난했던 삶.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마음 편하게 살아 보지도 못하시고, 생의 마지막에는 암투병 고통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
어느 날 서울에서 직장 다니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위장병이 치료해도 낫지 않는다고 하시며 전화를 하셨다.
그래서 아픈 증상이 어떠냐고 듣고 나니 암이라는 예감을 하게 되었다.
부랴부랴 서울로 모시고 강북삼성병원에 진찰결과 역시 위암이었으며, 수술을 하고 보니 벌써 3기로 진행되어 있었다.
그리고 2 년쯤 지난 후 다시 재발이 되고, 그 병원 진료진 중에 몇몇 친척이 있어서 긴밀한 의견은 고치기가 어려운 상태로 전이되어 있으니 차라리 편하게 생을 마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아아. 이제는 어쩔 방법도 없이 아버지와 영원한 이별의 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게 되다니...
그런 후 아버지께서는 마지막 몇 달 동안은 삶을 내려놓고 떠나는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시게 되고, 나는 지켜보는 너무도 슬픔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우선 묘지를 어디에 쓰는 것을 정해야 했고 풍수를 보는 분은 우리 소유의 산에서 좋은 곳을 정 해 주셨는데, 조금 먼 곳으로 양지바른 산허리였다. 그런데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가장 집에서 가까이, 생각 같으면 텃밭이라도 좋으니 무조건 아주 가까이 모시고 싶었다.
그래서 집에서 100미터 쯤 떨어진 양지바른 산과 밭이 닿아있는 평소 아버지께서 일 하시다가 담배 피우시며 휴식을 취하시던 그 자리에 모시려고 하였다.
아버지께서는 풍수적인 문제로, 나는 아버지께서 비록 떠나신 뒤에라도 정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느끼려고, 먼 산 중턱보다는 그 자리로 서로 의견 충돌이 되어 버렸다.
적잖은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의 의견을 마지막인데 들어 주어야 하는 게 옳은 지...
그런데 역시 아버지는 이내 아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시는 분이셨다.
그리고는 그 묘지로 예정된 곳에 자주 가서 머물다가 오시고는 편안해 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얼마나 슬펐는지...
이제 마지막 남은 시간도 가고 아버지와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되어 가는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앙상하고 숨소리조차 희미한 아버지를 나는 마지막의 순간이 다가옴을 알고 품속으로 끌어 안았다.
초등학교 입학 하던 날, 그 때 눈이 많이 와서 걷기 힘들어 나를 등에 업고 입학식에 등교시키고, 그날 노래할 사람에 내가 지명되어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대견해 하셨던 아버지...
그랬던 아버지가 새싹이 잘 자라도록 자양분을 몽땅 주고 말라버린 떡잎처럼, 사그라진 아주 작은 몸이 되어 내 품속에 포근히 안겨져 돌아 가셨다.
꽃상여를 붙잡고 통곡하며 울었던 그날,
아버지께서 둥근 물고기가 되어 하늘로 헤엄쳐 가시던 날은, 벼가 한창 자라기 시작하는 푸른색 들판위로 굵은 빗방울의 소나기가 줄기차게 내렸다.
마치 내 깊은 슬픔의 눈물처럼......
<내가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기르고 있는 화분의 사과꽃>
<아파트에서 기르기 힘든 사과나무를 심어 사과꽃을 피우는 까닭은 고향의 아름다운 정서를 느끼기 위해서다>
친구의 동생. 지혜경영연구소 대표.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한양대경영학부 외래교수
공인회계사.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 불교방송국 회계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