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최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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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꽃나무하고 여자 그림자하고 /최정례...고 최정례시인님의 삼가 명복을 빕니다.카테고리 없음 2021. 1. 18. 18:28
그는 산벚꽃나무와 여자 그림자 하나 데리고 살지요 그는 돈도 없고 처자도 없고 집도 없고 그는 늙었지요 바위 구멍 굴딱지 같은 곳에서 기어나와 한참을 앉아 있지요 서성거리지요 산벚꽃나무 기운없이 늘어진 걸 보니 봄이 왔지요 냄비를 부시다 말고 앓아 누운 여자 그림자를 안아다 양지 쪽에 눕히고 햇빛을 깔고 햇빛을 덮어주고 종잇장같이 얇은 그녀도 하얗게 늙어가지요 산벚꽃나무 장님처녀 눈곱 달듯 한두 송이 꽃 매달지요 그녀의 이마가 그녀의 볼이 따뜻하지요 아니 차디차지요 이 봄은 믿을 수가 없지요 그녀를 눕혔던 자리 아지랭이 피어오르고 그녀가 천천히 날아가지요 산벚꽃나무 너무 늙어 겨우 꽃잎 두 장 매달았다 떨구지요 또 봄은 가지요 그녀는 세상에 없는 여자고 그래도 그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지요 산벚꽃나무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