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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그림자가 바위를 미는 동안 ...그리운 이름 같은 노란 살구가 익어가요.

비밀의 꽃밭 2016. 6. 16. 13:59




<아파트 화분에서 살구나무 열매가 노랗게 익어 가요. 16.6.5일>

 

 

구름이 산등성이를 밀고 지나갑니다

번지는 먹그늘에 산이 안색을 바꿉니다

오늘은 기다리는 일로만 하루를 온전히 탕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마당에 비질을 하고, 맑게 갠 귀퉁이에

살구나무 그늘이 밑동의 바위를 미는 걸 지켜보렵니다

나무가 밀다 만 바위귀에 툭,

모래알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하루

술렁이는 그림자 따라 바위도 할 말이 많은 표정입니다

 

바위도 외로우면 금이 가고, 쩌억

저라도 쪼개 마주하고 싶은 것일까요

한때 저는 저 나무둥치에 그리운 이의 이름을 파 넣었지요

지금은 기억에도 없지만

지워지고 지워져서

한잎이 되고, 또 한잎이 되어 돋아나는 당신이 있습니다

 

이 오랜만의 기다림은 한눈을 잘 팔던 아이를 생각나게 합니다

저물녘 쿨럭이는 슬레이트 지붕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아이

제가 평생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저녁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무엇을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림 속에 빠져 있던

그 외로운 아이인지도 모릅니다

 

기다리는 일 하나만으로 참 멀리 갔다 온 듯합니다

이걸 영원이라고 불러도 좋을지요

언젠가 저도 저 산등성이를 밀며 가는 구름을 따라 흘러 가겠습니다

 


​- 살구나무 그림자가 바위를 미는 동안 / 손택수 -

















<고향집 담장 아래 자라고 있는 청포도입니다>



  <고향에서 옮겨 와 화분에 심어 놓은 청포도 넝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