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간이역에 밤열차를 탔다...아카시아꽃 인연과 이별
<해운대 기차역사에 피어 보랏빛 향기가 아름다운 250년 자란 멀구슬나무꽃입니다>
기차는 오지 않았고
나는 대합실에서 서성거렸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비옷을 이은 역수만이 고단한 하루를 짊어지고
플랫폼 희미한 가로등 아래 서 있었다.
조급할 것도 없었지만 나는 어서
그가 들고 있는 깃발이 오르기를 바랐다.
산다는 것은 때로 까닭 모를 슬픔을
부여안고 떠나가는 밤열차 같은 것.
안 갈 수도, 중도에 내릴 수도,
다시는 되돌아올 수도 없는 길.
쓸쓸했다. 내가 희망하는 것은
언제나 연착했고, 하나뿐인 차표를
환불할 수도 없었으므로,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버릇처럼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그와 닮은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끝내 배웅도 하지 않으려는가,
나직이 한숨을 몰아쉬며 나는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
밤열차를 타는 사람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가슴 속 너무 깊숙이 들어 있어
꺼내지도 못할 사연이.
졸려서 충혈 된 게 아니다.
지나온 생애를 더듬느라
다 젖은 눈시울이여,
차창 너머 하염없이 무엇을 보는가.
어둠의 끝, 세상의 끝이 보이는가.
밤열차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깊이 정들지 말자.
그저 조용히 있게 내버려두자.
낯선 간이역을, 삶이란 것은 결국
이 간이역들처럼 잠시 스쳤다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스친 것조차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아닐까
달리는 기차 차창에 언뜻 비쳤다가
금세 사라지고 마는 밤풍경들처럼
내게 존재했던 모든 것들은 정말이지
얼마나 빨리 내 곁을 스쳐 지나갔는지
돌이켜보면, 언제나 나는 혼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을 서성거렸지만
정작 내가 그의 손을 필요로 할 때는
옆에 없었다. 저 만치 비켜 서 있었다
그래, 우리가 언제 혼자가 아닌 적이 있었더냐
사는 모든 날이 늘
무지개빛으로 빛날 수만은 없어서,
그래서 절망하고 가슴 아파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나는 그리웠던 이름들을 나직히 불러보며
이제 더이상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바람 불고 비내리고
무지개 뜨는 세상이 아름답듯
사랑하고 이별하고
가슴 아파하는 삶이 아름답기에
밤열차는 또 어디서 흘러가는 것인지...
<우리집 옆에 있는 동해남부선 해운대역 기차길 옆에 피어있는 멀구슬나무 꽃입니다>
열차는 도착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떠나고 있었다.
역사의 낡은 목조 계단을 내려가며
그 삐걱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생애가 그렇게 삐걱대는 소리를 들었다.
취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마신 술이
잠시 내 발걸음을 비틀거리게 했지만
나는 부러 꼿꼿한 발걸음으로 역사를 나섰다.
철로변 플랫폼엔 비가 내리는데
구멍 숭숭 뚫린 천막 지붕 사이로 비가 내리는데
나보다 더 취한 눈으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고
낡은 의자 위 보따리를 가슴에 품은 채 잠에 떨어진
아낙네도 있었다.
밤화장 짙은 소녀의 한 숨 같은
담배 연기도 보였지만 나는 애써 외면했다.
외면할 수밖에, 밤열차를 타는 사람들 저마다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이제 곧
열차가 들어오면, 나는 나대로 또 저들은 저들대로
그렇게 좀더 먼 곳으로 흘러가게 되리라.
그렇게 흘러 흘러 우리가 닿는곳은 어디일까.
나는 지금 내 삶의 간이역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어느덧 열차는 어둠에 미끄러지듯
플랫폼으로 들어서고
열차에 올라타며 나는 잠시 두리번거렸다.
철저히 혼자였지만 혼자인 척하지 않기 위해.
배웅 나올 사람도 없었지만 배웅 나올 사람이
좀 늦나 보다, 하며.
아주 잠깐 그대를 떠올렸지만
나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그대 내 맘속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며,
기다릴 그 누구도 없는
비 오는 간이역에서 나는 밤열차를 탔다.
이제는 정말 외로움과 동행이다.
열차는 아직 떠나지 않았지만
나는 벌써 떠나고 없었다.
<우리집 옆을 지나는 동해남부선 철길옆에 꽃핀 멀구슬나무꽃입니다>
나는 늘 혼자서 떠났다.
누군들 혼자가 아니랴만
내가 막상 필요로 할 때 그대는 없었다.
그랬다. 삶이라는 건
조금씩 조금씩 외로움에 친숙해진다는 것.
그랬다. 사랑이라는 건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지는 것.
늦은 밤, 완행열차 차창 밖으로 별빛이 흐를 때
나는 까닭 없이 한숨을 쉬었다.
종착역 낯선 객지의
허름한 여인숙 문을 기웃거리며
난 또 혼자라는 사실에 절망했고,
그렇게 절망하다가 비 오는 거리 한구석에서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당신을 떠올려 보았다.
-비오는 간이역에 밤열차를 탔다/이정하-
<영동선에 있는 눈이 하얗게 내린 어릴적 고향기차역입니다.
어제는 해운대역에서는 밤비 내리는 기차를 탓는데, 도착한 새벽의 고향역에서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진출저: 바이트래인 카페>
<저의 블로그 이웃님께서 며칠 전에 저의 고향의 유명한 기차여행 '눈꽃열차'를 하면서 저에게 보내준 사진입니다>
올해부터는 눈꽃열차뿐만 아니라, 고향에 산골짜기를 굽이굽이 흘러가는 낙동강변의 경치와 태백산과 청옥산을 볼 수가 있도록
열차의 지붕만 있고 사방이 개방된 특별객차를 만들어서 시속 30킬로미터로 천천히 달리는 특별 관광열차를 고향철길을 연속왕복해서 운행하기로 했다고 어제 신문에 나오는 군요.
<고향역>
250년 자란 나무는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날리고 있는데....
우리 인간의 삶은, 사랑은 몇 년을 꽃 피우는 가.
일 년,
반 백년
.
백년 아니면
.
.
영원히.....
<해운대 기차역 안에 자란 멀구슬나무꽃입니다>
아름드리 나무가지가 껴안듯 어우러져 꽃이 피었다.
우리 인간의 삶도 이런 아름다운 사랑으로 영원히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어제 동해남부선 해운대 역에서 밤 열차를 타서, 중앙선을 지나고
영동선 시작을 하는 고향의 기차역을 내려 간 곳에서
너무 슬픈 눈물이 쏟아내며 목이 메어 아무말도 못하고 돌아와
아픈 눈으로 일기를 쓴다.
푸른 시절의 내 삶은
아카시아 피는 어느 날 ...
생사를 넘나들었다.
아카시아꽃 흐드러게 피고 햇살도 화사하게 내리던 오월
그 때 나는 오열했었다.
어제 새벽에도 난 또 한 번 울음을 참지 못하던 그날 같았다.
내 삶을...
사랑과 인연을 생각하며
비내리던 어제 밤열차를 타고 어두운 창밖을 보며 참많이 슬퍼했다.
고향의 들녁에서 내가 담은 사진이다.
이렇듯 하나는 아름답게 마악 피어나고,
또 한켠에서는
곧 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릴 홑씨 같은 것
우리 인생과 사랑도 그럴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