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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모과열매,해운대 대보름 달맞이 축제

비밀의 꽃밭 2013. 2. 22. 20:51

 

 

 

살아가면서 많은 것이 묻혀지고 잊혀진다 하더라도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언젠가 내가 바람편이라도

그대가 만나보고 싶은 까닭입니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겠지만

그대와의 사랑. 그 추억만은 고스란히 남겨두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까닭입니다.

 

 

두고두고 떠올리며 소식 알고픈

단 하나의 사람

내 삶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 남겨준 사람

슬픔에서 벗어나야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그대에게서 벗어나 나 이제

그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네

처음부터 많이도 달랐지만 많이도 같았던

차마 잊지 못할 내 소중한 인연이여

 

 

그대의 숨결을 가까이 느끼면서

매일 아침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렵니다

 

 

앞뜰에는 그대 닮은 예쁜 꽃들을 키우고

연못에는 그대 닮은 금붕어를 키우고 싶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는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선하고 너그러운 그대의 마음을 닮아가렵니다

 

 

그대 향한 내 사랑을 노래하는

작은 새가 살고 있는 나무 아래에서

그대에게 아름다운 시를 읊어주고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그대와 나란히 앉아

서로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까만 밤하늘 아래 두 손 모아

우리의 내일을 위해 기도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별빛에 흠뻑 취해

그대의 품안에서 고요히 잠들고 싶습니다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화창한 날에도 흐린 날에도

나는 그대의 손을 꼭 잡고서

늘 그대 곁에 함께 있고 싶습니다

 

**한사람/이정하 시인님**

 

 

 

 

봄이 곧 올 것만 같은 날이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은 더욱 씁쓸하고, 웬지 슬픈 그리움에 휩싸였다.

 

이 지구 어느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구의 70억  사람중에 한 사람 일, 그...

그러나

그가 있어서 마냥 내가 살아가는 힘이되고

하늘아래 함께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한사람...

 

이제는 내 가슴에 이름 석자만 남아 있는 사람

그리움이란 빛깔의 꽃잎 하나를 남겨준 한사람..

 

언젠가는 끝나게 될 그날까지

내 생애와 늘 함께 할 그에 대한 그리움...

아, 오늘밤도 더욱 그립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wen, 1770-1827)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선배 중엔 헨델이, 후배 중엔 브람스가 독신 음악가였다. 그러나 헨델이나 브람스의 생애에서 연애사건을 찾아 보기가 퍽 어려운데 비해 베토벤의 일생은 '불공평한' 연애관계로 인해 숱한 고뇌에 빠졌던 흔적들이 의외로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 몇번의 불공평한 연애사건이 구체적 자료들(누구인가? 언제인가? 연애의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은 어느 것 하나도 분명한 것이 없는 형편이다. 자료가 있다면 베토벤이 남긴 몇통의 편지에서 이니셜로 표기 되고 있는 여인들과 그의 제자나 친구, 혹은 전기작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몇명의 연인에 대한 불확실한 서술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거의 그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난 연인들은 한결같이 귀족 출신인 <테레제 브룬스비크>, <요제피네 브룬스비크>, <테레제 말파티> 등 세 여인이며 이들을 흔히 {불멸의 애인}으로 지칭한다. 불멸의 애인은, 물론 이 세 여인 이외에도 거론되는 경우가 있으나,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셋 가운데 한 사람이 베토벤의 불멸의 애인일 것이라는 사실에 합의된듯 싶다.

1949년 여름, 헝가리 출신의 귀족 여인 <요제피네 데임> 백작부인과 그의 가족들이 남긴 편지와 문서등이 경매에 붙여졌는데 그 경매품 속에 지금까지 전혀 공개된 일이 없었던 13통의 베토벤의 편지가 들어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 편지들의 수신자는 요제피네였으며 베토벤이 쓴 어휘 등의 내용으로 보아 요제피네가 바로 불멸의 애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 했다.

요제피네 데임 백작부인은 1779년 3월 28일, 아나톨 브룬스비크 백작(1745-1792)의 세째로 태어났다. 요제피네는 그녀가 스물한살이었던 1800년에 언니 테레제, 오빠 프란츠, 여동생 샬로트와 함께 베토벤과 친교를 맺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얼마 뒤엔 사촌 줄리에타 귀치아르디가 베토벤과의 친교 그룹에 합세했다. (베토벤의 전기를 쓴 신틀러는 줄리에타를 불멸의 애인으로 기술하고 있다. 베토벤은 그녀에게 [月光소나타]를 바쳤다.)

브룬스비크家의 딸들이 베토벤과 만나게 된 것은 그녀들이 그로부터 피아노 렛슨 받기를 열렬히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요제피네와 베토벤이 최초로 상면한
것은 1799년 5월로 추정되고 있는데, 그때만해도 이미 베토벤의 명성은 빈에서
절대적인 것이었고 그가 아무나 제자를 삼지 않는다는 평판이 있는 터여서 요제피네의 어머니인 백작부인이 직접 베토벤을 방문하여 레슨 허락을 받아냄으로써 베토벤과의 관계가 시작됐던 것이다.

베토벤은 처음부터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친절과 열성을 다해 레슨을 했는데 1시간 예정이 4∼5시간으로 연장되는 일이 흔할 정도였다. 이 무렵 요제피네는 47살의 요제프 데임백작의 열렬한 구애를 받고 있었는데 어머니 역시 적극적으로 딸을 설득하여 결국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후일 그녀의 언니 테레제는 동생이 "늙은 남편에게 언제나 정다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데임 백작은 결혼한 지 4년반이 지났을 때 프라하에서 급사했고, 이때부터 요제피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녀에겐 네 자녀가 있었는데 교육이 큰 문제였다. 여러 지방을 여행하면서 아이들을 맡길 유능한 교육자를 찾아 다녔고 그렇게해서 만난 인물이 에스토니아 출신인 크리스토프 폰 시타켈베르크였다. 그는 아이를 맡는 조건으로 요제피네의 남편이 되겠다는 제안을 했고 둘은 1810년 2월에 결혼했다. 순전히 '자녀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요제피네는 재혼한 것이다.

베토벤의 연애편지 13통은 요제피네가 데임백작과 결혼했을 때부터 재혼하기 이전까지의 기간에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거의 모든 편지는 '데임 백작부인'으로 되어있고 몇통은 "브룬스비크네 집에서 태어난"이라고 수신인이 적혀있다. 베토벤은 달아오르는 사랑의 정열을 편지마다 가득 담고 있는데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서 자주 그녀의 집에 초대되어 식사를 함께 하고 음악회를 여는등 만나는 횟수가 잦았고 어쩌다 며칠 만나지 못할 경우엔 초조한 마음을 어찌할줄 모르는 투정이 그의 편지를 메우기도 했다.

이 무렵 두사람의 관계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던 테레제는 동생 샬로테에게 보낸 편지에 "그런데 페니(요제피네의 애칭)나 베토벤이나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가르쳐다오. 조심하지 않으면 안돼요!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갖고 있어야해. 그것은 슬픈 의무이긴 하지만 더 슬픈 일이 되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고 염려하고 있다. 이러한 주변의 눈초리를 의식한 베토벤은 요제피네에게 그간의 세평(世評)이나 소문을 소상히 쓴 다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두 사람 이외에도 아무도 문제 삼고 있지는 않는 것입니다. ...(中略)... 오! 당신의 사랑에 의하여 내내 행복이 쌓아 올려지도록, 그것이 더 많아지도록 힘써 주세요. 오! 사랑하는 J(요제피네의 이니셜),...(中略)... 당신을 만난 그때부터 그것은 내게 그밖의 어떤 사랑의 싹도 허용하지 않을만큼 굳은 결정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정복한 것입니다. ...(中略)... 오! 神이여! 무엇을 아직 당신에게 말해야 할 것인지, 내가 얼마나 당신을 생각하고 있는지, 당신에게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것은 그렇게도 중요합니다. 당신의 심장이 나를 위해서 뛰게 될 때가 언제 올 것인지--내 심장은 죽을 때까지 당신을 위해서 끊이지 않고 뛸 것입니다. 사랑하는 J, 안녕 "이라고 자기의 사랑을 호소하고 있다.

당시, 베토벤은 귓병의 악화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하일리겐쉬타트에선 유서를 작성할 만큼 심각하게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일변시켜 희망적인 삶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순전히 요제피네의 사랑이라고 확신하고 있는듯 하다. 그녀에게 보낸 편지 말미에 그가 썼던 표현만을 모아보면, "당신의 충실한 베토벤" "내 마음의 천사여" "사랑하는 오직 한 사람의 J, 베토벤" "천사-내마음의-내목숨의" "언제까지나 당신에게 순종하는 베토벤"
등이다. 그러나 요제피네는 언니 테레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한때 베토벤과의 결혼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워낙 성급하고 격정적이고 변하기 쉽고 상처받기 일쑤였던 그의 정신 상태에 기가 질리기도 했고, 그녀와 베토벤 사이에 놓여진 신분의 차이로 인해 '어떤 거리'를 두면서 친교를 지속시켰다. 이러한 그녀의 심리를 엿보게하는 편지가 있다.

"베토벤씨, 당신과의 가까운 교제는 이번 겨울을 통해서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겨 한시도 또 무엇 하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기뻐하고 계시는 건지 슬퍼하고 계시는 건지 그건 당신 자신이 아는 일입니다. ...(中略)... 당신에게 반한 기분은 직접 뵙기 전부터의 일로 그것이 당신의 친절에 의해 자라났던 것입니다. 내 마음속의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당신을 좋아하게 한 것입니다. ...(中略)... 당신과의 교제가 나에게 준 기쁨은 당신의 사랑이 관능적인 것만 아니라면 내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장식이 될 것입니다. 내가 이 관능적인 애정에 만족할 수 없음을 당신은 노하고 계시는 겁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대로 따르면 나는 신선한 경계를 범하게 됩니다. 살펴 주세요."

베토벤과 요제피네가 분명 대단히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이 편지에서 '관능적인 사랑'에 대한 애매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은 신분등의 차이에서 오는 사랑의 유한성(有限性)을 인식한 그녀의 신중한 처신이라고 보여진다. '관능적 애정'이라는 그녀의 표현은 독자들이 자유롭게 해석해야 할 부분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요제피네가 시타켈베르크와 결혼함으로써 단절된듯 보인다. 그녀의 언니 테레제는 1817년 7월 12일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요제피네는 루이지(베토벤)의 불행때문에 몹시 상심하고 있는 것 같지만---그의 아내였다면 그 위인을 위해 불가능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요제피네와 베토벤사이에는 서로의 입장과 생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랑의 불꽃을 다투어 피워 올렸다는 것은 사실이며 이러한 사랑의 교환은 지극한 부부애를 테마로 한 오페라 <피델리오>를 탄생시키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기도 했다.

요제피네가 과연 베토벤의 불멸의 애인이었는가? 하는 문제도 물론 관심사이긴 하겠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위대한 예술가의 가식없는 사랑이 사회의 관습이나 계급적, 신분적 차이에서 기인된 불균형한 애정관계로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는 한 인간의 비극과 슬픔이다. "연애는 동등한 사랑으로 보답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내심의 보이지 않는 모멸을 받거나 두 가지 중 하나가 되는 것이 正則이다"라고 말한 베이컨의 충고처럼 베토벤은 요제피네로 부터 후자(后者)의 대접을 받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비단 요제피네의 경우 뿐 아니라 불멸의 연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여타의 여성들의 경우에도 한결같이 적용되고 있다. 베토벤이 평생을 독신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그 불행의 전말이 이런데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그가 남긴 말. "무한한 정신력을 가지면서도 미구에
쇠망해 가는 우리는 고통과 즐거움만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중 선택된 사랑은 고통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베토벤이야말로 고통을 통해서 환희를 얻도록 선택된 위인이다. 그러한 생각은 말년에 갈수록 절실해져서 그의 최후의 교향곡인 제 9번 4악장에서 바리톤의 입을 빌려 "친구여! 이토록 시끄러운 소리가 아닌 더 아름다운 소리는 없겠는가?"라고 절규했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그것은 곧 그의 음악에 존경을 바치는 온 인류의 연인일 수 도…그러나 매우 이기적이고 우유부단했던 여인들이었다.

 

 봄에 피고나서 싹이 올라와 다시 모과가 익은 초겨울에 두 번째 하얀백합이 피었습니다.

 

향기도 일반모과 두 배정도 더 향기가 좋으며,  단단한 일반적인 모과의 열매가 아니고 사과처럼 연하여 모과술을 담그거나 엑기스로 담그어도 일반모과와 전혀 다른, 우수한 품종으로 개량한 모과입니다.

 

 

모과 분재에는 이제 새잎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무스카리꽃이 피고 있습니다. 까치와 직박구리 새가 꽃봉우리를 계속 뜯어 먹어 땅콩과 쌀을 뿌려 놓았더니 몇송이 피어 있네요. 

그래도 봄은 이렇게 오고 있나 봅니다.

레몬 열매 

레몬은 설날(양력) 때 한창 꽃이 피고 있더나 열매가 팥알같이 자라고 지난해의 열매는 노랗게 익어 있습니다. 

일남일호라는 밀감은 지금 노랗게 익어 있습니다.

 

추위에 강한 불루베리는 벌써 새잎이 많이 자라고 꽃봉우리가 커졌습니다.   초록의 새잎을 보니까 봄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금 ' 스와니' 라는 품종의 불루베리가 꽃봉우리가 맺혔어요. 자세히 보면 봉우리가 보입니다.

 

 

2013. 2.24일 정월 대보름 해운대 달맞이 축제 사진

구름이 있어서 정월 대보름 달이 흐릇하게 실루엣만 보입니다.(달맞이 언덕 위로 흰점)

 

 

 

산모롱이 한 굽이 돌아 당신을 만나러 간다.
당신의 희미하고 둥근 눈썹을 예전에 내가 어루만지기나 하듯이
꺼져가는 달을 어루만지는 허공, 저렇게 오래 배웅하는 것도 큰 상처가 될 것이다.

 

잠깐 눈발은 그쳐 있다.
산새 가 다시 운다. 울음이 성성하다.
나와 당신 사이에 싸락 눈에 묻힐 산모롱이가 한 굽이 있다.
 

 

 

-산모롱이 저편 -문태준-

 

 

 

내마음은 구름속에 갇혀서

흐릿하게 실루엣만 드러내는 보름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을 보며 문재준 시인의 시를 생각하니...더욱.

 

 

'''내가 그를 내내 그리워하는 것도

그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다...

 

 

해운대해수욕장 넓은 모래사장에 촛불을 이렇게 밝혀 놓고 기도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제가 놀랐습니다.

짚불 태우기

 

강강수월래